"×××님이 주문하신 연말특별상품 '나이 한 살'이 내일 아침 배송되오니
수령 후 수취 확인 바랍니다." 해가 바뀌기 몇 시간 전, 문자를 받았다. 친
하게 지내는 직장 동료가 주문한 상품이 곧 집으로 배송될 예정이라는 안내 문
자였다. 사은품으로 '주름살'도 함께 발송했다고 한다. "본 상품은 반송, 교환,
환불이 불가하며, 안티에이징 제품으로 배송품을 환불할 경우 몇 년 뒤 '나이
열 살' 제품이 배송되오니 유의하기 바란다"는 경고성 안내가 추신처럼 이어
졌다. 새해 첫날, 날이 밝기 무섭게 상품과 사은품이 도착했다. 거절할 수 없
는 물건은 고맙게 받는 것이 상책이다.
나이 쉰을 넘겨 지천명과 이순의 중간에 가까운 나이가 되고 보니 나이를 먹는
것이 점점 무감각해진다. 불의 사고로, 또는 지병으로 하나 둘 사라져가는 친구나
동창들을 볼 때마다 남은 인생이 덤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갈수록 늘어나는
평균수명과 쥐꼬리만 한 예상 연금 수령액을 비교하면 조바심을 내야 마땅하지만
왠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앞만 보고 달려온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남은 오
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미리 걱정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살이 마음먹기 나름이란 각오로 살고 있다. 검은색 안경을 쓰고
보면 검게 보이고, 노란색 안경을 쓰고 보면 노랗게 보인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세상
을 보면 뭐든지 뒤틀려 보이기 마련이다. 긍적적인 눈으로 봐야 검은 구름속에서도 한
줄기 햇살을 볼 수 있다. 나이 든 데다 생각까지 어둡고 부정적이라면 그런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가족들도 싫어할 것이다. 새해 아침, 마음속에 커다란 풍선을 그
리고, 그 안에 온갖 어두운 생각을 담아 하늘 높이 날려보냈다.
몇 년 전 세밑에 린위랑의 <생활의 발견>을 인용해 현실과 꿈이 조화를 이루되
유머를 잃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현실을 바탕으로 꿈을 꾸지만
그것을 한 발 떨어져서 비스듬히 바라볼 줄 아는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갈수록 절실하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터널 속에서도 터널
밖의 세상을 생각하며 껄껄 웃어넘길 줄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부정
적이고, 변화 자체를 거부하기 쉽다. 눈이 쌓인 큰 나무가지는 결국 부러지고 꺽인다.
그러나 작은 나뭇가지는 자연스럽게 휘어져 눈을 아래로 털어버리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 본모습을 유지한다.
2000년 전, 눈길을 걷던 노자는 눈 덮인 나뭇가지를 보고 형태를 구부러뜨려 변화하는
것이 버티고 저항하는 것보다 낫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변화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변화를 멈출 때 비로소 늙기 시작한다. 새해 선물로 보낸 뜻밖의 유머로 웃음과 깨달음을
준 동료가 고맙다.
중앙일보/ 배명복 논설위원/ 2012.1.2
*요약
세상살이 마음먹기 나름이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뭐든지 뒤틀려 보인다.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봐야 구름속에서도 한 줄기 빛이 보인다.
사람이 늙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변화를 멈추기 때문이다. 나무에 눈이 쌓일때
무거운 것을 버티며 붙들고 있다가는 가지가 꺽어진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휘어져 눈을
아래로 털어버리면 원래상태로 돌아가 본 모습을 유지 하듯 우리 인생도 환경에 순응
하며 변화할 때 건강한 정신과 몸을 소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