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대화
미당 서정주는 팔순 넘어 집에 스위스 목동이 부는 뿔피리를 갖다 뒀다. 10여년 전 미당을
찾아가자 이층으로 안내했다. 쇼파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미당이 "마실 거 드릴
까"묻더니 뿔피리를 집어 들었다. 그가 "뿌웅~"하고 힘껏 불자 아래층에서 방옥숙 여사가
올라왔다 "영감, 뭐 필요한 거 있수?" 미당은 씩 웃으며 "아내가 요즘 귀가 잘 들리지 않
아서"라고 했다. 그래도 시인 부부는 대화가 잘 통했다. 미당은 "아내에게 '양귀비 얼굴보
다 곱네"라고 하면 대여섯 살 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려쳐 웃는다"고 했다.
신달자 시인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0년 넘게 돌보다 10여 년 전 떠나보냈다. 시인은
"남편이 달콤한 말은 안 해줬지만 나름 사랑을 표현했는데 그땐 그게 보이지 않더라'고 되
돌아봤다. 그는 종종 결혼 생활 특강에 나선다. "부부끼리는 '말 안 해도 안다'는 말은 틀렸다.
한 달에 한 번 부부끼리 감정을 풀 수 있는 날을 정해 대화하라"고 권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조사했더니 부부 세 쌍 중 한 쌍은 하루 30분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대화 시간은 결혼 기간이 길수록 짧아진다. 결혼 5년 미만 부부 중에 대화 시간이 10
분이 안 된다고 답한 경우는 8%에 그쳤다. 이 비율이 10년 넘은 부부에게선 15%로 뛰었다.
대화를 방해하는 것으론 '늦은 귀가와 주말 근무'가 첫째로 꼽혔다. 'TV와 스마트폰'이 뒤를
이었다. 대화 주제도 자녀 문제가 40%를 넘었다. 부부 자신에 관한 얘기는 15%밖에 안
됐다.
우리는 OECD 회원국 중에 이혼율 1위다. 이혼 부부 다섯 쌍 중 한 쌍이 대화 단절을 파경의
이유로 꼽는다. 2년전 노부부가 사이가 틀어져 7년 동안 메모지로만 대화를 나누다 황혼 이혼
을 했다. 부부 사이에 말이 끊기면 정(情)도 날아가기 마련이다. 부부 상담 전문가들은 "상
대방 자존심을 깎는 표현을 하지 말라"고 한다. "당신은 항상" 이라는 말투도 피해야 한다.
굳이 따져야겠다면 '항상' 대신 '가끔'을 쓰는 게 낫다.
조선일보/ 박해현 논설위원/ 2013.12.25
*요약하기
부부 사이에 대화는 너무도 중요하다.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자존심을 깍는 표현은 피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미당 서정주는 팔순의 나이에 자신의 방식을 개발해 귀가 어두운 아내와 의사소통을 한다.
신달자 시인은 부부가 한 달에 한 번 감정을 풀 수 있는 날을 정해 대화하라고 권한다.
결혼기간이 길수록 대화의 시간이 짧아졌다고 통계 조사 결과가 말한다.
부부의 의사소통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만드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