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말년 / 정성희 논설위원 / 중앙일보 / 2011.10. 01
최근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기옥 할머니의 산문집 '나는 내 나이가 좋다'를 즐겨 추천한다.
이광수 소설 '흙'의 실제 모델이었던 농촌계몽 운동가 이종준의 맏딸, 한국알레르기학회장
을 지낸 고 강석영 서울대 의대 교수의 아내, 김홍빈 서울 역사박물관장의 어머니가 바로 그다.
'나는 지금 순간의 나를 더없이 사랑한다. 내 마음속에 아직은 추억을 즐길 여유가 있고, 수능의
걱정도, 자식들의 취직에서도 한발 비껴선 노인만의 한가한 여유가 있다. 60대에 화가로, 80대에
수필가로 등단한 이 할머니의 나이는 88세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조지 베이런트 교수는 노후에 계속 일하고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을 일곱 가지
로 정리했다.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 교육, 안정된 결혼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이 그것이다. 고개가 끄뎍여지지만 실행은 쉽지 않다. 베일런트 교수는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
이 드는 것을 결정짓는 것은 지적 뛰어남이나 계급이 아니라 인간관계'라고 지적했다. 특히 47세까지
형성된 인간관계는 방어기제를 제외한 어떤 변수보다도 성공적 노화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고 박경리 선생은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많은 시련과 고통도 시간이
흘러가면 아름다운 추억일 뿐이라고 노래했다. '모진 세월이 가고/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옛날의 그 집). 고 박완서선생은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에서 6.25전쟁으로 좌절된 자신의 꿈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인생의 말년은 바라보
기에 따라 삶의 완성일 수도, 사람의 쇠락일 수도 있다.
개신교계에 큰 영향력을 지닌 빌리 그레이엄 목사(92)의 30번째 저서 '홈을 앞두고: 삶, 믿음, 그리고
멋진 마무리'가 출간 전부터 미국에서 화제다 그레이엄 목사의 어릴 때 꿈인 야구 선수를 빗댄 제목이다.
그는 '노년의 외로움과 고통, 정신적 친구를 잃은 슬픔에 대해선 그 누구도 당신을 위해 준비해 주지 않는
다'고 충고한다. 아울러 더 열심히 기도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열정적 삶을 사는 것이 아름다운 말년'
을 위해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노년일수록 삶에 대한 강인한 태도와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가짐이 요구된
다는 점을 인생의 대선배들이 일깨워준다.